[33]칠칠한 사람, 서슴는 사람 고두현 논설위원/한국경제/2019.04.15

- 베껴쓰기

조선시대 궁중의 말과 마굿관을 관리하던 관청이 있었다. 그곳 하인들은 높은 사람이 행차할 때 길을 비키라고 소리치며 건달처럼 거드름을 피웠다. 거기에서 '거들거리다'라는 말이 나왔고, '거덜나다(살림이나 무슨 일이 흔들려 결딴나다)'라는 표현이 정착됐다. 우리말에는 이 같은 생활 속의 용례가 풍부하게 반영돼 있다. 

 

'시치미를 떼다(알고도 짐짓 모르는 체하다)'는 매사냥에서 유래한 말이다. 시치미는 매의 꼬리털 속에 얇게 매단 명패다. 이것을 떼면 누구의 매인지 알 수 없게 된다. 쓸데없고 공연한 행동을 가리키는 '부질없다'는 강하고 단단한 쇠를 얻기 위해서 쇠를 달구는 '불질'에서 나온 말이다. 불질을 하지 않은 쇠는 금세 휘어지기에 쓸모가 없다. 

 

무심코 쓰면서 뜻을 모르는 경우도 많다. 그제 삼성그룹 신입사원 공채 시험에 '겸양하다'의 반의어를 묻는 문제가 나왔다. 정답은 '잘난 체하다'의 의미를 지닌 '젠체하다'였다. 수험생들은 '난생 처음보는 단어'라며 곤혹스러워했다. '칠칠하다(일을 갈끔하고 민첩하게 처리하다)'와 '서슴다(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머뭇거리며 망설이다)'도 까다로운 문제로 거론됐다. 평소 '칠칠맞다' 등을 부정어법으로 쓰다보니 더 헷갈렸다는 수험생이 많다.

 

일상 생활에서 중복된 표현을 잘못 쓰는 사례도 많다. '앙금'은 녹말 등의 부드러운 가루가 물에 가라앉아 생긴 층을 일컫는데 "앙금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로 쓰는 건 중복이다. 이미 다 가라앉아 생긴것이 '앙금'이므로 '앙금이 가시지 않고 있다'고 해야 한다. '하락세로 치닫고 있다'도 '치닫다'가 위로 끌려 올라가는 의미니까 '하락세로 내닫고 있다'고 하는 게 옳다. 

 

일본말처럼 들리는 우리말도 있다. '에누리'는 잘라내다라는 뜻을 가진 '에다'의 어간에 접미사 '누리'가 붙어서 이뤄진 말이다. '물건 값을 깎는 일' 또는 '어떤 말을 더 보태거나 축소해 얘기하는 것'을 뜻한다. '야코가 죽다'의 '야코'는 양코가 줄어서 된 말로 서양인의 높은 코가 낮아졌다는 말이다.

 

TV 자막에 잘못된 우리말이 많이 등장한다는 지적도 많다. 지상파 주말 예능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자막이 편당 1400개를 넘는다고 한다. 그중에는 터무니없이 왜곡된 표현이 많다.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말은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거울이다. 우리말 속담에 '같은 말도 툭 해서 다르고 탁 해서 다르다'고 했다. '말이 고우면 비지 사러 갔다가 두부 사온다'는 말도 있다.

 

- 요약 및 의견

우리가 쓰는 단어 중에는 일상 생활 속에서 유래된 것들이 상당히 많다. '시치미를 떼다'의 '시치미'는 매의 꼬리에 매단 이름표를 뜻하고, '부질없다'의 '부질'은 쇠를 단단하고 강하게 '불질'하는 데서 나온 말이다. 이렇게 어원을 알고서 사용한다면 훨씬 재미있게 습득할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 설명을 해주기도 쉬울텐데, 어릴때는 그냥 습관적으로 외우거나 자주 듣다보니 자연스레 습득해서 썼던거 같다. 딸이 태어난 후 조금 커서 이러한 단어들을 물어보면 어원의 유래를 들어가며 재미있게 설명을 해줘야겠다.

 

어원을 잘 모르고 쓰던 표현도 많지만 평소에 우리가 의미를 잘못 알거나 거꾸로 이해하고 쓰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예를 들어 삼성그룹 공채 시험문제에서 나온 '칠칠하다'는 본래 '일을 깔끔하게 하고 민첩하게 처리하다'라는 뜻인데 우리는 '칠칠맞다' '칠칠치 못하다' 등의 부정어법으로 쓰다보니 그 뜻을 제대로 모르고 쓰고 있었다. '서슴다'도 '결단하지 못하고 망설이다'의 의미인데, 우리가 보통 '서슴치 않다'로 부정어와 함께 쓰다보니 그 의미를 거꾸로 생각하여 사용하고 있었다. 

 

문제는 아예 잘못 쓰고 있는 표현들이다. 이러한 표현들을 예능 등에서 자막으로 그대로 내보내고 있다보니 시청자들이 잘못된 표현에 익숙해져 실생활에서 그대로 쓰는 악순환이 발생하게 된다. 재미를 가미하기 위해 중.고등학생들이 많이 쓰는 줄임말 등도 자주 표현되는데 그 세대를 이해하는데 도움은 되지만 이런 풍조가 반드시 옳다고만은 할 수 없어 보인다.

 

나도 평소에 잘못 쓰고 있는 표현들이 상당히 많다는 것을 알게되어 반성하고 있다. 그래도 사설을 베껴쓰며 기존에 잘못 쓰고 있던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많이 고쳐 나가고 있다. 아직도 기존에 쓰던 습관 때문에 잘못 써서 고치는 작업이 잦은 편이다. 표현 하나하나에도 올바른 용법이 있는데 틀리게 쓸 뿐만 아니라 줄임말이 성행하고, 명작을 비슷하게 보인다며 띵작이라고 쓰듯이 이상한(?) 표현들이 만들어지는 것을 보니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아름다운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서는 우리 한명한명의 노력이 필요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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